무상급식, 아이들의 마음을 안아주세요.


/* 728x90, 작성됨 09. 5. 25 임시 정지 */
지방선거를 몇 달 앞두고 논란이 되는 핫이슈 중의 하나는 '무상급식'입니다.

단순히 무상급식에 대한 찬성이냐 반대냐라는 건 지나친 흑백논리인 듯 하고

실제로는 모든 아이들에게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제공해야한다는 사람들과

왜 전체에게 제공을 하냐, 정말 힘든 아이들만 선별해서 무상급식을 하는 게 효율적이다

뭐 이런 주장의 대립이 강한 것 같습니다.

뭐 생각들에 따라서 둘 다 그럴 듯 하긴 하지만 저도 작은 제 소망에 대한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무엇인고 하니 '효율'보다는 '마음'을 생각해달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선별적 무상급식이 무엇인지.

매학기 초(인지 매월인지는 잘모르겠습니다만) 선생님이 반에 들어와 조회를 합니다.

'자, 우리반에 이번 학기 무상급식 신청자 누구있나 손들어봐'

몇명이 조용히 손을 들면 다시 이렇게 말하겠죠.

'그래? 그럼 손든 사람들 내일까지 소득 증빙이나 의료보험료 납입 증명서 같은 거 떼와'

네. 지극히 사무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대화이겠습니다만 조금만 더 생각해볼까요?

이 학생들의 지금 기분이 어떨지?

정말로 손들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들고 나서 

아마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거나, 혹은 부모님 원망이 많이 되겠죠.

혹은 일부러 기죽지 않으려고 친구들한테

'가라로 무상급식 된 담에 엄마한테는 받아서 삥땅치면 그게 얼만데~'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득증빙서류를 떼어 오라는 말은 곧

'네가 얼마나 가난한지를 너 스스로 증명하여라' 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집의 가난함을 매월 혹은 매학기 혹은 매년 친구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

어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나이 학생들에게는 그런 경험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까요.



제가 고등학교 입학하기 직전에 우리나라에 IMF 사태라는 것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1학년이 끝날 무렵, 

지방의 말단 9급 공무원이셨던 저희 아버지도 '명예퇴직'을 하셔야 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어머니 몰래 친구 빚보증을 서셨던 아버지 덕에

그 퇴직금도 고스란이 은행이 다 가져가고 말았죠.

네. 그랬었습니다.

2학년에 올라갔는데 '가정환경조사'라는 걸 하더군요.

거기에 부모님 직업란이 있는데 그 걸 붙잡고 한참을 고민하고

남몰래 눈물 찔끔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죽어도 무직이라고는 쓰기 싫고..뭐라고 써야할지..

또 한 번은 장학금을 신청해야 하는데 

의료보험 납입 영수증과 재산세 영수증을 내야한다더군요.

네 의료보험료가 얼만지 정확히 기억은 안납니다만 대충 채 만원이 안되었던 듯 하고 재산세는 0원이더군요.

장학금은 받았습니다만, 참..기분이 묘하더군요.


저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게다가 저희 고등학교는 '특별반'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친한 친구들도 상당수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의사, 변호사, 교수 뭐 그런 어디 나서서 다들 한자리씩 차지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직업란에 뭐라고 적어야 하지라는 고민과

장학금 신청을 하기 위해 어떤 핑계를 만들어야 하나(다른 친구들에게 기죽지 않으려고 말이죠) 고민을 해야한다는 건

뭐라고 해야할까요..

네 뭐 적절한 표현을 찾지는 못하겠습니다만 그렇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렸던 그 때 제 머리 속에는

'나는 부모님처럼 살지 말아야지'와

'이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

네. 그런 생각들이 가득했었습니다.


저는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S대를 졸업하고

국내에서 손꼽히는 모 기업에서 나이에 비해 상당한 연봉을 받으며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악에 받쳤던 그 때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끔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들의 입장에서는, 교육 행정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때 일들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제게는 아직 깊숙한 생채기가 되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생각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너의 가난을 너 스스로 모든 이들 앞에서 증명하여라'라고 하는 요구가

과연 제대로된 '교육'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인지.

그런 요구가, 아이들에게, 또 청소년들에게 가슴에 상처를 내는 일인지.


저는 그래서 모든 아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무상급식 도입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아이들에게 아무런 상처없이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면

제가 조금 더 세금을 내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말씀을 드립니다.

최소한 저 강을 파 뒤집는데다 버리고 있는 수십조의 돈을 생각하면 더욱 더 말이죠.


국회 의원 여러분.

무상 어쩌고 말만 나오면 '사회주의적 발상이다'라고 욕하지만 말고

(사실 사회주의적인 발상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사실 의문입니다만..최소한 '공산주의적'이라면 또 몰라도..

설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도 구분 못하신 건 아닐테고..-_-a)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애들이 어딨냐'라는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개념날려버린 뻘소리를 날리지 말고

여러분이 사는 강남 높은 아파트를 벗어나

조금만 낮은 곳에 눈을 돌려

그 곳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말하는 것들이 그 아이들에게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

돌아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세금 그 까짓거..똑바로만 쓰신다면야 소득의 반을 떼가도 좋습니다.

멀쩡한 강바닥 파뒤집지 말고

멀쩡한 보도블럭 갈아 엎지 말고

쓸데 없이 삐까뻔적 화려한 구청 시청 짓지 말고

차도 없는 동네에 고속도로 내고 다리 만들어 놓은 건설사들 배불리지 말고

있는 사람들 세금깍아주느라 없는 사람들 세금 삥뜯지 말고..

네 그래도 배고픈 애들 밥은 먹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또 치사하게 밥 가지고 생색은 있는대로 내고

애들 마음에 상처는 상처대로 주고 그러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