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謹弔]사람 사는 세상

오늘, 향이라도 하나 피워야겠다는 생각에

버스를 타고 시청을 향했다.

그러나 시청 앞에서 내리는 나를 반기는 것은

국화나 향 내음이 아니라

끝이 보이지 않는 닭장차와, 시꺼먼 전투복을 입은 전경들이다.

무언가 알아듣기 힘든 구호를 외치며

위압에 찬 걸음으로 어딘가로 달리는 전경들.

그리고 그 때 내 옆에 선 아저씨 주머니에서 치지직 거리는 무전소리.

비로소 깨닫는다.

아. 사복경찰.


정류장에 내려

길 건너 덕수궁 앞으로 가는 길은 멀다.

경찰들이 반쯤 막아선 시청역으로 내려가

일단 줄끝을 찾으러 나서는 것도 힘들고

줄 끝을 찾아본들 분향소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두어시간쯤 지나고.

겨우 내 눈에 분향소가 보일때쯤

그 분향소 주변을 빼곡히 둘러싼 것은 추모의 행렬과

또 그 주변을 둘러싼 닭장차들.

그리고 또 검은 전투복을 뒤집어쓴 전경들과

가끔 그들을 향해 욕을 날리는 아저씨들.


어색한 풍경이다.


저들이 뒤집어 쓴 검은 전투복이

다른 이들의 검은 상복과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하얀 국화 한송이가 이리도 무서울까.

최대한의 예우를 강조하며

파란 넥타이를 매고 나선 대변인과

근조라는 팝업을 환한 웃음으로 내건

어느 모습이 생각날 뿐.



어렵사리 국화 한송이를 놓고 돌아선다.

담배있냐는 말이 생각나 담배 한개피 피워놓고 오고 싶지만

앞에 이미 잔뜩 쌓여있는 담배들이

이미 가시는 길에 향대신 매캐한 그 내음을 풍기고 있고

끝도 없이 뒤에 늘어선 줄을 보면

나 말고도 고인을 기릴 사람들이 많기에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선다.


돌아오는 길도 너무나 멀다.

굽이 굽이 모든 길을 틀어막은 닭장차를 지나

버스에 올라도 눈에 보이는 건 온통

모든 길을 틀어막은 검은 옷의 그네들 뿐.

저 검은 옷이 상복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저 씁쓸함이 묻어난다.



차창밖으로 서울 르네상스라는 광고판이 눈길을 잡아끈다.

르네상스.

신으로부터, 인간으로 되돌아온 문예부흥운동.

하지만 서울 르네상스에서는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로지 뜯고 부수고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와 페인트 냄새만이 어지러울 뿐.

길 저편에 스쳐지나는 불에 탄 용산의 건물과

그 건물을 둘러싼 닭장 차들이

그들의 서울 르네상스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고인이 꿈꾸던 사람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스치는 차창밖의 모습은

너무나 차갑다.

사람 나는 내음이 나기에는 아직은 너무나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