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와 산업 안전.


/* 728x90, 작성됨 09. 5. 25 임시 정지 */
나는 엔지니어다.

그런데..흔히 말하는 3D (Dirty, Difficult, Dangerous) 는 전부 내 이야기 같아서 가끔 가슴이 아프다.

우선 Difficult는 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엔지니어다. -_-)

Dirty.

ㅇ ㅏ..엔지니어는..사무직이면서 생산직이다.

새로 만드는 놈들. 시험하려는 놈들.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것도 엔지니어의 몫이다.

늘 손에서 나는 기름 냄새와, 기름에 쩔어있는 작업복은 나의 삶..-_-

그래도 이것들은 좀 낫다.

Dangerous.

이게 참 난감하다.

이 놈의 개발이라는 놈을 하다보면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경우도 많다라는 걸 느낀다.



나의 전문 분야는 로봇이다.

산업용 로봇. (자동차 회사에서 용접하고, 페인트 칠하고, 차체 들어서 옮기고 하는 그런 놈들말이다)

이 산업용 로봇이란 놈이 힘도 좋고, 속도도 빨라서

대부분의 경우 스치면 최소 골절, 운없으면 사망으로 직행하기 좋은 놈이다.

그래서 안전 규정도 매우 까다로운데 간단한 몇가지 규정만 해도

수동 운전시 이중 안전 장치와, 이중의 비상 정지 버튼, 속도 제한 등과

자동 운전 시에는 아예 일정 높이 이상의 펜스와

펜스 출입구가 열릴 경우 자동으로 펜스내 로봇의 전원을 차단하는 장치 등을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물론 이건 실제 필드의 이야기이고

개발에서는..저런 거 없다. -_-;;



저런 안전 장치가 제대로 동작하는 지를 시험하는 것도 내 일이고

온갖 비정상적인 상황에서의 안정성을 시험하는 것도 내 일이다.

결국 저런 안전 장비가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만들고 시험하는게 업이다보니

구체적인 상황을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드물게(드물게라는 표현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황당한, 혹은 위험한 상황들이 왕왕 발생하고

그러다 보면 어제 지나가시던 부장님이 '우리는 목숨을 걸고 개발하는 거야'라는 말이 농담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자동차라든지 전자 제품과 같이 대량 생산을 기본으로 하는, 그리고 개발비가 충분한 곳은 낫겠지만

불충분한 개발비와 인력 하에서 소량 생산을 하는 경우에

예산 등의 문제로 개발 과정에서 충분한 안전을 담보한 상태에서 시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결국 그러다보면 걸게 되는 건 나의 목숨이라는 그런 억울한 생각까지..-_-;;

며칠 전에도 한번 위험한 경우를 겪은 덕일지도 모르겠지만

(물론 나의 덤벙대는 성격이 한몫하긴 했지만 애초에 위험성이 있는 상황의 제공은 결국 '업'의 문제다)

참, 위험한 곳에서 나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다닐 때도 보면 왕왕 그런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공대 건물 복도에 설치된 샤워기..-_-;;

신입생 때 저건 왠 샤워기인가 라고 고민했더니

화공과 같은데서 위험 물질이 몸에 튀었을 때 닦아내기 위한 장비라고..-_-;;

2000년에 있었던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폭발 사고나 2006년 카이스트 항공과 폭발사고도 대표적인 실험실 사고의 예이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알려지지 않은 사고들이 빈발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참 가슴 한 구석이 짠 하고 아파올 수 밖에는.

(저게 다 내 이야기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생산직의 경우에는 그래도 노동부 등의 해당 관청의 관리 감독과

특히 노조 등의 지속적인 요구로 상당부분 산업안전에 많은 신경을 쓰게 되는데

엔지니어는 그들과 비슷한, 혹은 더 위험한(애초에 그 안전장치를 만들고 시험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상황 하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그런 안전조치에서는 많이 벗어나 있는 느낌이다.

특히 학교같은 경우에는 그냥 뭐 형식적인 안전 교육 이런 거 말고는 '예산'상의 이유로 직접적인 대책은 전혀 신경도 못쓰는 형편 아니겠는가.

도대체 엔지니어들의 목숨은 누가 지켜주는 것인가.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하는 건가?



'예산'이라는 이유로 등을 떠밀고서는

벼랑위에 서서 떨어지지 않게 아슬아슬 균형을 잡아가는 건 내 책임이라는 곳.



참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라는 생각이 든다.

어렵고, 힘든데, 내 목숨까지 걸어야 하나라는 생각.

한숨 한 번 쉬고.

이제 또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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