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21세기 한국의 경제학.


/* 728x90, 작성됨 09. 5. 25 임시 정지 */


88만원 세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나의 세대에 대한 경제학적 호칭이 되어가고 있는 말.

점점 취업의 장벽에 막히고,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현재 20대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책.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삼성이나 현대차 등등이 계속해서 사상 최대의 순익을 올리고 있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고.

물론 삼성이나 현대차에서 그동안 진행된 혁신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혁신의 일부로 들어간 것은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과

흔히 말하는 아웃소싱 확대, 원가 절감과 같은 것인데

그 결과 절감된 이익은 크게 보면 결국 정당하게 노동자들과 협력업체의 몫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부분을

대기업이 모두 들고 간 결과는 아닐까?


결국 일을 하는 양, 인력의 투입을 줄인게 아니라

단위 시간당, 단위 인원당 인건비를 줄이고

들어가는 부속 자체의 설계 개선, 유통 개선 등을 통한 원가 절감을 넘어

동일 부품에 대한 협력업체의 납품 단가 인하를 통한 원가 절감.

그런 것들에 '쥐어짜기', 혹은 '착취'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시장주의'는 원래 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가정해서 이루어진 이상적인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시장에서 강자와 약자가 나뉘는 순간, 강자가 모든 것을 다 갖게 되는

그리하여, 강자가 약자를 수탈하는 구조로 흘러갈 수 밖에 없는 '불안정한 시스템'에 기반을 둔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장주의의 불안정성은 19세기 서양의 천민자본주의 시대와 20세기 초 대공황을 겪으며 충분히 경험된 바 있고

이런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니 '수정자본주의'니 하는 것들이 하는 것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20세기 말 IMF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 도대체 왜 작은 정부가 선(善)이 되어버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그런 수탈의 구조에 대한 조정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말았다.

겉으로 '불법'으로 드러나는 '담합'과 같은 일부 경쟁 제한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가했으되

비정규직에 대한 착취, 협력사에 대한 후려치기와 같은

합법이되 구조적인 수탈의 만연에 대해서는 그저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이다.


김대중 - 노무현 으로 이어진 민주당 정권에 들어가서 이런 문제가 더욱 불거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정부가 민주적인 정부였고

특히 노무현 정부의 경우,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집착과, 지나치게 약한 권력 기반의 한계로 인해

IMF 이후 경제에 대한 헤게모니를 틀어쥔 대기업들에 대한 충분한 제재를 가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아쉽게도 현재 상황으로는 전혀 안될 것 같은것이 현실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든, 한나라당이 계속 정권을 잡든.

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그나마 상징적인 민주주의는 개선될 수 있겠으나

경제적 헤게모니를 쥔 자들에게 민주당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무하다고 생각된다.

아주 강력한 리더쉽과 '꼴통'같은 추진력,

그러면서도 모든 이들에게서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슈퍼맨'이 나오지 않는 이상에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이런 상황에 대한 '개선의지' 자체가 없을테니

20대와 여성,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같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은 상당기간 암흑기를 지나야 하지 않을까?


더 큰 문제는 이런 사회적 구조로 인해 피해를 보는 자들이, 자신들이 입는 피해를

단지 IMF 이후 낮아진 '경제성장률'과 그로 인해 충분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은 까닭으로 여기고

모든 비난을 당시 정부, 즉 민주당 정권으로 돌리는 일이 많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경제성장률이 중국과 동일한 수준까지 올라가더라도

이런 경제성장의 열매가 경제적 약자들에게 돌아갈 일은 없어보인다.

10년전에 비해 삼성이나 현대차의 이익이 10배로 늘었다지만, 그 협력업체들의 이익은

같거나 오히려 줄어든 것을 보면 말이다.


이런 상황의 개선을 위해서는 결국 구조의 개선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구조의 개선을 위해서 작가는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들고 나서라고 한다.

기성세대의 논리에 찌들어서, '개미지옥' 게임에서 이겨보려고 아둥바둥 하는 20대.

하지만 20대인 내가 보기에도 20대가 '바리케이트'와 '짱돌'을 들고 나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취업보다도 직접적인 등록금 투쟁에도 전혀 바람이 불 생각도 아는 20대의 현실을 곰곰히 보면

가능할 지 말 지 보이지도 않는 뜬 구름 잡는 소리를 위해 나서라?

글쎄요.


사실, 본래 구조 개선에 나서야 했던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 하는 386 세대였다.

항상 새로운 흐름이 있고, 그 흐름의 전위에 서는 세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현재까지 그 흐름의 마지막에 있었던 세대는 386이었다.

하지만 386세대들이 권력의 중심으로 올라가는 순간

386세대는 20대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기성세대로 편입되었으며 

20대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모든 사회적 문을 닫아버리는데 앞장 섰다.

여기에 앞장선 사람들이 오XX 나XX 와 같은 사람들이고

그나마 저항해보려했다가 욕만 먹고 나자빠진 사람이 유XX 정도 되겠다.

(선거철임을 고려하여 비실명 처리하였음)


앞에서 끌어줄 그 누구도 없이 단절되어버리고

세대내에서조차 파편화되어버린 20대.

이제 남겨진 것은 비정규직이냐 실업이냐 라는 선택지뿐이다.

극소수를 위해 남겨진 일부의 탈출구를 빼면.


이 상황이 이제 앞으로 10년 이상 지속되면 현재의 멕시코와 같은 경제형태로

뒤바뀔지 모른다.

높은 국민소득과($11,000, 2005년 기준) 빈부격차.

그로 인한 사회 불안까지.

현재의 추세로 보면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없어보인다.

이제 남은 시간은 정말 없다.


경제학의 유명한 딜레마가 있다.


경찰에게 잡힌 두 죄수가 있다.

경찰은 한 명씩 잡아다 족친다.

니가 범행을 불면 딴 놈은 완전 병신만들겠지만 너는 쫌 봐줄게.

근데 니가 안불고 딴 놈이 불면 넌 완전 죽는 거야. 라고

그런데 증거도 없는 상황이라 둘다 같이 안불면 무죄로 풀려나는 상황.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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