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 얼굴 공개, 옳은 것일까?

뭐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를 이 글을 읽는 많은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기도 하고

이거 잘만하면 지난번 대박쳤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악플이 달릴 것도 같지만 각오하고 한 번 글을 쓰기로 한다.

미리 이야기 하지만 결론은 '범죄자 얼굴 공개는 절대 안된다'이다.

범죄자 얼굴 공개에 찬성하는 사람도 싫더라도 한 번 글을 읽고 악플이 아닌 진지한 댓글을 달아주셨으면 하다.


우선 현행법상에 범죄자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주화된 국가의 기본 법원칙 중 하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다.

즉 최종심에서 유죄 라고 판결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재 공판시에 푸른색 수의에 포승줄을 한 모습을 하는 것도 원칙상 어긋하는 것도 사실이다. 원하면 사복차림으로 재판을 받을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음)

이번 사건을 보면 다들 떠올리는 영화가 있다.

'살인의 추억'

거기에서 박노식씨가 열연했던 바보가 있다. '백광호'라고..

그리고 그 바보는 압박에 쫓긴 형사들에 의해 고문당하고 자기가 범인이라고 거짓진술하고

연쇄 살인마로 몰려 현장검증까지 하게 된다.

온갖 언론에 공개가 되고 전국적으로 살인마로 지탄받지만 결국 그는 범인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용의자를 '무죄'라고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번 무너진 원칙은 다시금 계속 해서 무너질 것이고,

그 여러번의 와중에 분명 백광호와 같은 선의의 피해자는 발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

그 것은 그 한 사람에 있어서 얼굴의 공개는 되돌릴 수 없는 치명타가 된다.

마치 예전에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혔던 수많은 사람들처럼.


다른 한 가지 이유는 얼굴 공개 후 범인의 걱정처럼

얼굴 공개가 자기 자신 보다는 자기의 주변 사람들, 특히 자식이나 부모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

물론 이번 범행에 분노하는 사람들은 '살인범, 내 아들은 어떻게 살라고'라는 제목의 기사에

'니 새끼 귀한 줄은 알고 남의 새끼 귀한 줄은 모르냐'라는 댓글들을 줄줄이 달았지만..

사실 그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머리를 식히고 생각해보자.

이미 자신의 아버지가, 아들이 연쇄 살인범이라는 사실에 그 가족은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 것이고

또 평생을 그 멍에를 진 채 살아갈 것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죄일까?

그런 그들의 정신적인 충격과 멍에까지 감싸줘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온 사회가 나서서 그들을 더 때리고 두들겨 패면, 속이 시원한가?


사실 이런 범죄자 자신과 가족들의 피해를 무릅쓰고서라도 피해자의 신상공개를 할 수도 있다.

단, 그런 부정적인 결과를 상쇄시켜주고도 남을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경우에 한해.

그런 대표적인 경우가 성범죄와 관련한 경우다.

성범죄의 경우 재범이 빈발하는 것이 사실이기에 재범 방지를 위해 전자 발찌, 화학적 거세(이건 우리나라는 안하고 외국도 거의 안한다) 등과 같은 여러가지 노력을 취하고 있고 그 중의 하나로 신상공개를 하고 있다.

이런 신상공개의 효과 중 하나는 신상공개를 통해 개인적 차원에서 '창피'를 줌으로써 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고(주로 성매매와 관련해)

다른 하나는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와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주로 성폭력, 특히 아동 성폭력)

즉 범죄 방지라는 확실한 억지 효과를 담보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극히 제한적으로,

이것 역시 최종심의 확정 판결 이후에, 판결에 의해서만 공개를 할 수 있는 것이 현재 현행법상의 신상공개 제도이다.


그런데 지금 연쇄 살인범의 신상공개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의 궁금증이라는 욕구 충족 외에 뭐가 있나?

재범 방지?

강호순은 누구나가 예상하듯이 무조건 사형이다.

물론 현재 우리나라의 사형집행이 정지되어 있지만

일단 들어가면 죽기 전에 밝은 햇빛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범죄 억제?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얼굴 공개된다고 연쇄 살인을 안할 거라면, 애초에 안했을 것이다..-_-


지금의 얼굴 공개는 '도대체 어떤 놈인지 얼굴이나 한번 보자'라는 대중의 궁금증 만족 이외에는 아무런 효과도 없는

공개적인 뻘타에 불과하다.

평소였으면 감히 꿈도 못꾸었을 일을 여론을 등에 업고 만만한 놈을 한 놈 잡아서 패버리는 일종의 폭력이랄까?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고, 대중의 알 권리도 중요하지만 한 개인의 인권도 중요하다.

그 개인이 연쇄살인마이건, 대통령이건, 서민이건, 재벌이건 간에 말이다.

(필요할 때마다 항상 입에 법법법을 달고 살았던, 그렇게 법치를 좋아하던 일부 언론이 제일 먼저 앞장 섰다는 건

뭐 그냥 '역시나'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예전에 헌법 관련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감명깊었던 문구가 있다.

헌법의 정신은 '그래서'나 '그러나'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연쇄살인범은...'

이 아니라

'연쇄살인범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인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라는 것이다. 물론 종교, 나이, 인종 등의 사회적 조건에 대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이야기를 한 것이지만

그것이 연쇄살인범이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옳을까?

대중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