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과 삽질, 그리고 역사 지우기


/* 728x90, 작성됨 09. 5. 25 임시 정지 */

오세훈 서울 시장은 청계천 복원, 서울광장 등 연속된 화제의 공사들을 진두 지휘한 후

대통령이 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시장이 되고서는 '디자인 수도'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고서는 다시금 서울 시내를 온통 공사판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사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야 전공이 삽질인 사람이니 그랬다 하지만

전공이 말장난인 율사 출신 시장마저도 삽질의 선봉에 서는 걸 보면 역시나 삽질의 위력은 대단한 모양이다.

하긴, 지난 총선에서 홍정욱 같은 풋내기 정치 신인이 노회찬 같은 거물을 '뉴타운'이라는 삽질 화제 하나로 이긴 걸 보면 말이다.

(물론 그 삽질 공약은 헛질로 끝이 난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이래저래 서울 시내가 공사판이다.

당장 내가 살고 있는 봉천동만 하더라도 디자인 서울 거리 조성 공사니 뭐니 해서 근처 노점상들과 토닥거리면서 밀어내고 있고

근처 흑석동은 뉴타운이 들어온다고 하면서 동네 전체를 밀어버릴 태세다.

뭐 내가 변두리에 산다고 변두리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얼마전 대문짝만하게 신문에 났던 것처럼 서울 시청도 밀어버리고 공사판을 벌이고 있고

낡아빠진 종로거리도 이제 재개발에 돌입할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의 서울 시가지는 새롭고 깔끔하고, 아티스틱한 그런 아름다운 거리로 탈바꿈 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라고 단언할 수 있다.



작년에 툴루즈에서 열린 IFAC ACA 2007에 갔다가 마지막 이틀을 파리에 머물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바로 파리가 아닌가..

그리고 여기 저기 구경을 하다가 우리가 영화로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는 퐁네프를 향했다.

Pont Neuf는 프랑스어로 새로 지은 다리라는 의미지만 사실은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아니 가장 오래된 다리여야 했다.

하지만 영화 흥행 이후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들르면서 깔끔하게 새단장을 했는데..

결과는?

최악이었다. 그냥 덩그러니 놓여버린 콘크리트가 되어버린 다리는

이제 역사도 감동도 풍기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실망만을 알려주는 곳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차라리 툴루즈의 Pont Neuf - 이 이름의 다리는 어느 도시에나 있다 - 가 훨씬 예뻤다)



왠지 서울도 그런 곳이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렵다.

역사도 감동도 지워버린 채 콘크리트 덩어리들을 올려놓고서는 오 아름다워라 라고 자위를 하는

그런 또라이 삽질 전공자가 또 하나 늘어날 것 같은 불안감..


문화재로 지정 예정이었던 서울 시청 태평홀을 '시청 재건축'을 이유로 문화재청 허가 없이 무단으로 밀어버린 서울시는

낡고 오래되어 냄새나는 것들을 모두 밀어버릴 모양인지

수백년을 내려온 피맛골도 재개발 지구로 지정해버렸다.

그 덕택에 청진동 해장국의 원조 청진옥은 24층짜리 빌딩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나머지 집들도 부랴부랴 이사채비를 하고 있다.

서울 시청을 새로 짓고, 피맛골을 재정비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하지만 그러면서 점점 서울은 서울의 역사를 잃어간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까?

서울은 사막위에 지어진 10년사이에 지어올린 두바이가 아니다.

수백년의 전통과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살아가면서 만들어진 곳이 서울이다.

그 전통과 역사를 지워버리고 콘크리트 덩어리를 올려놓으면, 그 곳에는 누가 찾아올까?



지은지 100년도 훨씬 더 된 에펠탑에는 하루에도 수십만명이 찾아오지만 초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라데팡스에는

정말 시간이 많고 파리를 다 둘러봐서 할일 없는 사람들이 아니면

딱히 '관광'을 하러 가는 사람은 드물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인사동을 구경하고, 피맛골에서 막걸리 한 잔을 즐길지언정

여의도에 63빌딩을 보러가거나 강남에 새로 지은 - 참 으리으리 하게도 지어놓은 - 삼성 본사 빌딩 따위를 보러가는 외국인 관광객은 없다.



삽질을 당신의 치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삽질을 하는 건 좋다.

그 삽질 위에 서울시장 XXX 라고 새겨놓든 말든..뭐 당신 마음대로 해도 좋다.

세금이 좀 아깝긴 하지만 뭐 당신네들이 세금 한 두푼 날려먹는 것도 아니고 맨날 날려먹는 세금 이제 그러려니 하고 살 수 있다.

그런데 600년 먹은 역사까지 지우지는 마라.

당신네들이 1년 삽질해서 4년 이름 남기려고 600년 역사를 지우고 나면

그 전통과 역사를 다시 만들려 600년을 또 기다려야 하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