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학력 청소년 교육 그리고 교재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
살아가는 이야기/내가 사는 이야기 2009. 2. 1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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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 만난 선배들은 흔히 말하는 운동권 선배들이었다.
그 선배들을 따라 흔한 시위현장 몇번 따라다닌 것,
그리고 교내 학생회 선거판을 쫓아다녔던 것이 내 운동권 경험의 전부였지만
그 판을 따라다니면서 간직한 것 하나는 행동하지는 못하되 늘 생각은 하고 고민은 하면서 살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만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결국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찮은 기회에 흘러들어와 몸담게 된 곳이 흔히 말하는 '공부방'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일종의 사회복지기관이다)
게다가 내가 몸담고 있는 공부방은, 공부방 중에서도 '강한' 곳이라
공부방 운영을 담당하시는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분의 말씀을 빌리면 소위 '문제아'라고 하는 학생들이 주로 들락거리는 곳이다.
나름대로 과외판에서 6년을 굴렀으니 닳고 닳은 선생질인데 이 아이들은 정말 만만치 않다.
일대일 개인 교습을 통해 익힌 학생 통제 방법은 한반에 한두명 있을까 말까한 아이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는 그야말로 무용지물.
조금만 눈을 떼면 졸거나 딴청을 피우는 것은 차라리 고맙고
한마디만 잘못했다가는 수업시간이 난장판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이 아이들과의 만남이 나의 사회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는 즐거움이기에 딱히 골칫덩어리라거나 어떤 교화의 대상처럼 여겨지지는 않는다.
다만 나의 맡은바 본분은 교사이기에 마냥 아이들과 함께 놀 수도 없고 수업이 나의 임무임을 생각하면
또 나의 부족함을 느끼면서 그날 그날을 어떻게든 잘 막아보는 수밖에는.
그리고 이 와중에 느끼는 것은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뒤에서 등수를 다투는 실력을 자랑하는 우리 아이들같은
MB식 용어로 학력미달 학생들을 위한 교재가 참 부족하다는 것.
생각해보면, 경시대회니 뭐니 하는 최상위권 학생들은 부모들이 거는 기대가 높기에 거기에 쏟아붇는 돈도 어마어마 한 것이고
그렇게에 그 수가 적어도 시장창출이 되는데 (혹은 그 능력이 안되더라도 그러길 바라는 부모들에 의해 부풀려진 시장도 있겠지)
이런 어떻게 보면 관심에서 벗어난 학생들이 창출하는 시장이란 있을리가 없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마저도 시장경제의 의한 세상이 아닌가.
하는 수 없이 중등부 학생들은 입문 과정을, 고등부 학생들은 입문이나 좀 나은 학생들은 중등부 과정으로 수업을 해보거나 할 수 있는 한 쉽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당최 어떻게 할 수 없는 건, 그 와중에도 학교에서 나가는 수업진도를 어떻게든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 아이들도 '시험'을 쳐야 하므로.
그러다보면 수업은 정말 이판사판 공사판으로 또 흘러가게 마련이고, 또 아이들은 수업과는 관계없는 자신들의 세계로 빠진다.
생각해보면 내가 고등학교 때 겪은 수업도 마찬가지다.
고등학교 수업은 똑같은 교재로 똑같이 나가는데
소위 말하는 상위권 일부 학생은 수업과는 상관없이 자기 공부를 하고 있고
일부는 수업을 듣고(요즘에는 학원숙제를 한다고도 하더군)
그리고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또 일부는 아예 그냥 자신들의 세계에 빠져, 잠을 자거나 딴청을 피우기 일쑤다.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흔히 말하는 교재라고 하는 것은 최상위권을 위한 것이거나, 중간수준의 학생들을 위한 것들 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재는 여태껏 눈씻고 찾아봐도 본 적이 없다.
비단 이런 문제는 학교 수업의 문제만이 아니어서
일대일 개인교습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이 수업을 못따라가도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서 낮춰 수업을 할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당장 '엄마'들이 우리 애를 뭘로 보고로 시작해 학교 성적을 맞출 수가 있네 없네
애 친구들은 어떤 교재를 쓰는데 이건 뭐냐 등등..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기 십상이다.
그 부모들에게는 우리 애는 착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친구를 잘못만났거나 혹은 제대로된 선생님을 못만난 탓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지금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는 많이 다르겠지만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기징 큰 것은 당장에 쓸 교재가 없다는 것.
그 누구도 이런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교재따위는 만들어준 적이 없다.
자기자신의 뼈를 깍는 노력과 희생이 있다면 물론 따라갈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리네가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듯이 그런 노력과 희생을 할 수 있는 학생은 손에 꼽는다.
물론 지금 나의 학생들 중에는 없다. ^^;;
그렇다고 이런 학생들을 내칠 수도 없다.
교육은 모든 이들을 안고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돈이 많건 적건,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회를 제공해줘야 하지 않을까?
수업을 못따라간다면 그 때 그 때 하나씩 둘씩 전부 떨어뜨려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둘씩 차곡차곡 챙겨서 올라올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쉽지는 않다.
한정된 교재와, 한정된 시간.
중학교 때 배우는 일차 다항식 풀이부터 가르치면서 고등학교 2학년 수학 수업 진도를 맞춰가는 것,
I my me mine 부터 가르치면서, 고등학교 영어 독해(물론 기초 수준의)를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않다가 아니라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그렇게 내일(이제 오늘) 또 있을 수업 걱정을 하다가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교재를 내가 만들어버리고 말겠다라는 생각.
사실 이런 교재를 만드는 것은 시간을 요하긴 하겠지만 어렵지는 않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앞뒤 잘라먹고 이 수준일거야 라고 가정한채 설명하지만 않는다면
고등학교 문제 하나를 풀더라도 중학교 수준의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면서 하나씩 문제를 풀어주면서 왜 이렇게 되어야 할까를 이야기해 줄 수 있다면
공부하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만 있다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이제 하나씩 만들어보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그런 교재가 없다는게 아쉽지만,
결국 아쉬움 끝에는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결론.
뭐 나도 공부하는 셈 치고 도전해볼 수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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