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소개팅


/* 728x90, 작성됨 09. 5. 25 임시 정지 */
꽃피는 봄에 혼자서 뒹구르르..

하고 있는 20대 후반 청춘이 안타까운지

아니면 나처럼 방황하는 영혼들을 일타쌍피로 처리해보겠다는 것인지

소개팅이 쏟아지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4월이 되면서 매주 소개팅 자리에 선다.

이젠 아주 기계적으로

연락하고, 장소를 잡고, 시간을 잡고..

했던 이야기 하고 하고 또하고.

처음엔 한 번 갔던 집 일주일만에 또 가긴 민망해서 다른 곳을 찾아봤는데

이젠 그냥 가던데 간다.

좀만 더 가면 소개팅녀 대신 알바 아가씨한테 사귀자고 들이댈지도 모르겠다.


어제도 어김없는 소개팅.

또 매일 가는 그 곳에 들러 소개팅녀가 잠시 자릴 비운 사이 주위를 둘러본다.

주변을 꽉 채워 커플인데

조용히 귀기울여 들어보면, 전부 소개팅하는 커플들이다.

지나가는 알바가 날 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

'넌 또 왔냐? 아가씬 또 바꼈네?'

라는 표정이다..=_=


컨설팅 펌의 애널리스트라는 이 아가씨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자신의 잘남과 능력을 끝없이 떠들어댄다.

ㅇ ㅏ..네 잘나셨습니다.

소개시켜준 선배랑 알게된 지 1주일 됐다는 말에 놀라

- 선배는 나한테 잘 아는 회사 후배라고 뻥쳤음 - 

그럼 여긴 뭘 믿고 나오셨나요 라고 물었더니

'월요일부터 프로젝트 시작이거든요. 그럼 이제 정신 없을텐데 미리 해야죠'

란다.

'애프터 신청은 하지 마세요' 라는 말을 참 어렵게 잘한다.

저도 별로 애프터 신청할 생각없어요


저녁을 먹고 커피숍에 앉아 '피곤'하다는 말로

'꾸벅꾸벅'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 이 아가씨

'피곤하신 것 같은데 그만 들어가시죠'라는 말과 함께

두시간 반의 짧은 소개팅은 끝났다.


그리고는 술을 좀 마셨다.

어차피 주말에 할 일 없는 영혼들은 늘 넘쳐나는 법이고

그런 영혼들이 또 모여서 하릴 없는 주말 밤을 죽였다.

느지막한 대낮에 다른 선배 방에서 정신을 차려

짬뽕 한그릇으로 속을 달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늘 다른 선배 결혼식이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이런 젠장.

지난 주 친구 결혼식도 못갔는데.

곰곰히 생각하니 다음주에 또 결혼식이 하나가 있고

또 소개팅이 하나가 있다.


음악을 전공했다는 이 아가씨는 또 어떤 자기 자랑을 늘어놓을지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골이 지끈지끈 아파온다.

과연 소개팅이라는 시스템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 형성에 신뢰성 있는 시스템인가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한다.


짬뽕을 먹으며 보던 출발 비디오 여행에 나온 어느 영화에서

안성기를 보고 이하나의 아빠가

'저 새낀 평생 연애도 한번 못해봤어'

라고 했다는데, 

같이 먹던 선배가 나더러

'너 유학가면 저게 니 모습이다' 라는데.


하나둘 늘어가는 나이와

하나 둘 장가가는 친구들.

유학갈거라는 말까지 하고 났더니 벌써 걱정이 되는지

'혹시 엄마 아는 누구의 딸인데 만나볼래'라는 말을 어떻게 꺼내볼까

슬슬 눈치를 보는 엄마


주말이 또 끝나간다.

'살아가는 이야기 > 내가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자리에서 오간 아이에 대한 이야기  (0) 2010.04.20
자폭  (2) 2010.04.20
나이라는 숫자  (1) 2010.02.09
갈림길에 서서.  (0) 2010.01.31
공연 포스터  (2) 2009.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