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슬픔


/* 728x90, 작성됨 09. 5. 25 임시 정지 */
나는 학교다닐 때 참 지지리도 공부를 안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한 것들에 이미 질려버렸을지도..

그 대신에 택한 것이 사람들과 만나는 것들이었다.

사람들과 만나면서 참 많은 선배들과도 만났다.

그리고 그런 선배들 중 상당수는 흔히 말하는 운동권 학생들이었다.

21세기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생활을 하며, 학교밖을 못벗어나는 선배를 보며

아직 세상은 참 무서운 곳이구나라고..

그래도 나는 그런 선배들 틈에 있으면서도 열혈 운동권이 되지는 못했다.

나는 그냥 소시민으로서, 내 개인의 삶에서 불의를 없애는 정도로 만족하기로 한 데에는

내가 타고난 겁쟁이인 까닭이 클 것이고,

그리고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기득권, 그것을 포기하기는 싫은 까닭이 더 클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 부모님이라는 이름을 갖다 끌어 합리화하여 포장했다.

대우차 사태 때 가만히 앉아서 농성하는 사람들 틈으로 경찰들이 뛰어들어와 짓밟고 피가 터지는 광경을 보았을 때도

근처 신림동의 철거촌에서 철거민들이 용역 깡패들에게 맞아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귀를 막고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었다.

그냥 나는..나의 선배라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나 스스로의 판단의 기준만 찾고, 나 혼자의 삶만 바른 길로 가는 정도로

나의 소심한 정의를 실천하겠다고..조용히 숨어있었다.



그리고 참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김대중 정부가 끝나고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나의 후배라는 친구들은 점점 그런 사회라는 것과는 담을 쌓고 나와는 달리 공부에 몰두했다.

운동권이라는 단어는 점점 잊혀져갔고, 민주화의 성지라는 아크로에는 동아리에서 틀어대는 음악소리와, 스쿠터 소리, 어제 친 시험을 걱정하는 소리들만 남게되었다.

그러나 사실 나는 이게 좋았다.

그냥 웃고, 떠들고, 친구들과의 맥주 한 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만남들..


운동권 선배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었지만, 결국 운동권의 몰락을 이끈 건 거대담론에 목을 맨 채 사람들의 미시담론을 포용하지 못한 그들이라고 믿었기에..

가끔은 거대담론 자체의 실종이 걱정스러워 후배들에게 여러 이야기들을 해줄 때도 있었지만..

사실은 거대담론 속에서의 투쟁보다는 미시담론 속에서 웃고 즐기는 하루가 오히려 즐거웠다.



참 오랫만에 거리에 섰다.

느낌도 달랐다.

그 때는 심각했었다면, 지금은 즐거웠고

그 때는 우리 뿐이었다면, 지금은 모두가 함께였다.

그리고..믿었다..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가 왔다고..

이정도 사람들의 함성이라면 저 파란 기와 밑에 숨은 아저씨 귀에도 들리겠지라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그 사람이 TV 앞에 섰다.

재협상에 가까운 추가 협상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 했고

끝까지 버리지 못할 것 같던 대운하도 포기하겠다고 했고

민영화도 무엇도 모두 중단하겠다고 이야기 했다.

믿었다.

이겼다고 믿었다.

내가 이겼고, 당신이 이겼고, 시민들이 이겼다고 믿었다.



사실 앞에서 느끼겠지만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이기고 타협주의자이기에

협상 원천 무효, 완전 재협상 따위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다만 바란 것은 독소조항에 대한 최소한의 수정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할 국가 수장으로서의 자각였다.

그리고 앞으로 이 정부가 벌이겠다고 떠들어 놓은 말도 안되는 정책들에 대한

아직 일어나지는 않았으나 곧 일어날 일들을 막기 위한 노력이었고 경고였다.

나는 그게 이루어졌다고 믿었다.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나보다.

촛불은 많이 사그라졌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지만 이정도라도 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어쩌면 지쳤나보다.

두 달의 싸움이 너무 길었나보다.



그런데..끝이 아니었나보다

그 사람은 반성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고비만 넘기고자 했었나보다.

눈치만 보던 그 사람의 친구들이 거리에 나섰다.

우리는 촛불을 들었는데 그 사람들은 각목을 들었다.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고, 가스통을 메고 KBS와 MBC의 담을 넘었다.

우리가 촛불을 들고 거리를 걸어갈 때 경찰은 우리에게 물대포와 소화기 그리고 구속영장을 선사했지만

그들이 각목과 쇠파이프를 들고 사람들을 때릴 때 경찰은 그들에게 훈방조치, 증거인멸을 선사했다.

우리가 가져간 증거는 증거가 아니라 했고, 우리가 잡아간 용의자는 용의자가 아니라 했다.

그들의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했고, 우리의 촛불은 폭력이라 했다.


그들이 라이터와 살충제로 만드는 화염방사기는 신의 축복이고

우리가 든 촛불은 악마의 지옥불이라도 되는 것일까?

손에 각목을 든 무리들이

우리에게 사탄이라 한다.


각목을 든 아저씨 대신

애기 엄마와, 12살 먹은 초등학생과, 스님들이 불법폭력시위라고 잡혀 갔다.

연행에 항의하는 국회의원도 여지 없지 잡혀갔다.


정치 교수, 땅투기한 교수, 논문 표절한 교수 등등은 죄다 데려다 청와대 수석, 장관 다 앉히더니

광우병에 바른 말 했던 교수는 갑자기

연구비 사용내역, 연구노트를 다 압수 당하고 이제는 표절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저기 아저씨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킨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지키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란

일본에 의해 근대화된 대한민국인가?

하긴 도요타 재단의 지원으로 만든 교과서를 가지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운운하는

저 아저씨들의 정체성이 사실 더 궁금하긴 하지만..



갑자기 슬퍼졌다.

저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지도층이라는게..

저들이 잘할 거라고 우리나라의 반이 넘는 사람들이 믿고 있다라는게..

내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다라는게..

그리고 일상을 빼앗긴 채 또다시

우리가 촛불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참을 수 없을만큼 슬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