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가 바라본 시장경제, 그리고 정부
살아가는 이야기/남이 사는 이야기 2010. 4. 29.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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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엔지니어다.
정확히는 제어공학을 전공했고, 모기업에서 시스템 해석과 제어 알고리즘 설계를 주로 한다.
(물론 우리나라 대부분의 엔지니어가 그렇듯 주업은 잡무다)
일이 일인지라 직업병마냥 가끔 모든 시스템을 공학적 틀에 맞춰 분석하길 즐겨하는데
오늘은 그 대상을 경제로 잡으려고 한다.
누구나 알 듯이 우리나라의 경제 원칙은 '자본주의'에 기반한 '시장경제'이다.
이 시장주의는 영국에서 국부라고 찬양받는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개념으로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효율성의 달성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시스템이다.
또한 이런 보이지 않는 손이 올바로 동작하기 위해서 애덤 스미스가 제시한
가장 기초적인 가정이 있는데 바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환경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장경제는 스스로 이런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지 못한다.
초기에 아주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있다고 하자.
그러면 이러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효율적인' 기업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이 단위 기업의 효율성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지 않을 때 향상되기 때문에
경쟁에서 이김으로써 시장을 원하는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생기게 되면
자연상태에서 시장은 흔히 말하는 '독과점'과 '불공정 경쟁'에 빠지게 된다.
자본주의의 등장초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이러한 독과점과 불공정 경쟁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되고
그로 인해 시장이 붕괴위기에 처하자 각국은 다시 '반독점법' 등 공정경쟁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시스템을 제어공학에서는 '불안정한 시스템(Unstable System)'이라고 부르는데
불안정한 시스템은 흔히 '제어기'라고 부르는 외부의 개입없이는 스스로 붕괴하게 된다.
경제라는 측면에서 보면 종종 찾아오는 경제 위기나 불황과 같은 것도 일종의 붕괴라고 볼 수도 있고
사회적인 붕괴, 즉 혁명과 같은 것도 동일한 붕괴라는 개념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1900년대 초 소비에트 혁명, 50~70년대까지 남미에서 발생한 사회주의 혁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붕괴를 막기 위해 제어공학에서는 '제어기'라는 것의 개입을 통해 불안정한 시스템을 '안정한 시스템(Stable System)'으로 바꾸게 되는데
경제에서는 이런 개입, 즉 제어기의 역할을 정부가 하게 된다.
따라서 '공정 경쟁에 관한 법률'이나 기타 각종 기업에 대한 규제와 같은 것들이
시장 자율을 해치는 쓸데없는 정부의 참견이 아니라 시장붕괴를 막기위한 필수적인 개입이라고 하겠다.
물론 지나친 개입은 경제 시스템의 경직화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적절한(물론 이게 어렵지만) 수준의 개입은
시장의 안정성 향상에 기여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인 안정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IMF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정부'를 선(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보수화된 셈인데, 현재로서는 그 보수화의 개념이 지나치게 강해서
적절한 수준에서의 정부 개입마저도 막고 종국에는 시장의 안정성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시장의 안정성이라는 개념은 '공정한 경쟁'의 환경으로서의 시장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즉 현재 발생하는 비정규직 및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부당한 요구라든지,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한 것이며
현재 이러한 문제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반증일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개선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장 수치적으로 쉽게 나올 수 있으며 동시에 치적으로도 떠들기 쉬운
경제성장률이나 수출과 같은 것에 매달려
직접 시장에 뛰어들어 4대강 사업이나 각종 토목사업을 대대적으로 벌리고 있으며
실제 정부가 해야하는 시장 왜곡의 개선이나 시장 중재자로서의 역할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흘러 만약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넘어가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된다면 최소한의 개선의지는 있겠지만 (한나라당 정부는 그 개선의지조차 없어보인다)
노무현 정부의 사례로 보건데
실천 능력 부족, 경제에 대한 이해력 부족과 그로 인해 모피아로 불리는 경제관료집단과 재벌에 휘둘리고
말 것으로 생각된다.
(노무현이 신자유주의 도입의 선봉에 선 것 역시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말이 길어지고 있다.
정리를 해야 할 시간.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에 대한 부당거래, 그리고 청년실업의 심화(이 상관관계는 나중에 기회를 봐서 언급하겠다)라는
당분간 현재의 추세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물론 정부는 그런 상황을 막기 위해 언론과 합심해 경제가 성장하면 모든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선전하겠지만
사실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시장의 안정성을 되돌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시장이 되지 않는한
그 성장의 열매가 일반 대중에게까지 내려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악의 경우 멕시코와 같은 남미형 경제로 흘러갈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런 상황은 결국은 정부에 의해서 개선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일반 시민들이 나설 수 밖에 없다.
'시스템의 붕괴'에 직면했을 때 결국 최대의 피해자는 약자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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