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그리고 기술과 기획


/* 728x90, 작성됨 09. 5. 25 임시 정지 */
오늘은 간만에 조금은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무엇인고 하니 아이폰에 대한 이야기이다.


불과 작년초만 해도 삼성과 LG의 핸드폰 사업본부들은 걱정이 없었고

각종 언론들은 그들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위협은 절정에서 오는 법.

결국 그들이 그렇게 무시하고 싶었던 아이폰의 위협이 현실이 되었고

결국 요즘 모 회사의 CTO는 아이폰을 갖고 다니며 자기네 개발진을 깐다고 한다.

'이게 언제 나온건데 니들은 아직까지 이것도 하나 못만드냐'

라고 하며.



[아이폰. 3G는 2007년 6월, 3Gs는 2009년 6월 각각 출시되었음]


그런데 여기서 하나 궁금증이 생긴다.

정말 아이폰이 도대체 언제 나온건데 삼성과 LG가 전력을 다해서 쏟아내고 있는 스마트 폰들이

아직까지 아이폰 하나를 못잡고 있나.

따지고 보면 거기에 들어가는 CPU부터 LCD에 이르기까지 부품의 상당수는

삼성과 LG가 만드는 건데 말이다.

그들이 정말 '기술'이 없어서 못만드는 것일까?


아이폰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스티브 잡스.

그런데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버린 이 CEO는 

다른 CEO들이 흔히 그렇듯 엔지니어가 아니며, 경영을 전공한 경영통이나 재무통도 아니다.

그는 '기획자'이다.


[살짝 뺀질함이 묻어나는 이 얼굴. 스티브 잡스]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의 역할을 알기 위해서는 애플의 창업과정을 먼저 보아야 한다.

사실, 스티브 잡스에 묻힌 감이 있지만 애플 공동창업주가 한명이 더 있다.

일반인들에게 그리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IT계에서는 전설과도 같은 인물 중 하나인 워즈니악.

뺀질뺀질함이 묻어나는 스티브 잡스가 열심히 머리 굴려서 장사가 되겠다 싶은 컨셉을 잡아

덕후삘 충만하신 워즈니악이 오덕오덕하며 뚝딱뚝딱 만든 것이 최초의 PC라 불리우는 애플 I과 애플 II 되시겠다.


[덕후삘 충만하신 이 분이 워즈니악. 아이패드를 붙잡고 오덕오덕 하시는 중]


뭐 어찌되었든 애플은 시작부터 명확하게 기술과 기획의 선을 긋고 출발한 회사였고

지금 스티브 잡스의 역할 역시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비록 지금은 잡스신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즉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기획'했고 (물론 아이팟과 기타 모든 제품들을 포함해서)

이것이 바로 그가 천재로 추앙받는 이유이다.


다들 잘아는 바와 같이 기획은 일종의 설계도를 그리는 것이며, 전체적인 제품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설계도를 그리는 일에도 감각이 필요한데, 스티브 잡스는 이 감각을 타고 났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제품기획은 주로 기존 제품의 개선 방향을 찾는 것이며

대부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찾는, 소비자의 needs를 맞추기 위한 제품을 기획하는 방향으로 이루어 진다.

그런데 가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기도 하며

혹은 소비자의 needs 자체를 만들어 내는 기획이 생기기도 하는데 

스티브 잡스는 특히 소비자의 needs를 만들어 내는 면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아이팟, 아이폰에 이은 아이패드까지 스티브 잡스는 기존에 있던 제품들을 새롭게 해석해내면서

새로운 소비자의 needs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현재 애플의 주가 총액이 MS를 넘어서고

또 한 때 모든 IT 기업들이 타도 MS를 외쳤던 것처럼 타도 애플을 외치게 만들었다.

또 스티브 잡스는 제품 기획 뿐만 아니라 사업기획에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하면서

과거 공룡이었던 MS가 '보수적'이라는 이미지를 가졌던데 반해 애플의 이미지를 '혁신'과 연계시키는데 성공했고

또한 아이튠즈와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그럼 다시 이제 눈을 돌려 삼성과 LG를 쳐다보기로 하자.

'아이폰 대항마'라는 이름을 하나같이 달고 나오는 

올해 5월부터 쏟아질 비슷비슷한 스마트 폰들은 

우선 흔히 말하는 스펙상으로는 다들 아이폰보다 우위에 있다.

1G급 스냅드래곤 칩이나 유사 수준의 칩셋을 사용하며(아이폰은 800MHz를 배터리를 위해 600MHz로 다운)

4인치 전후의 AMOLED 혹은 슈퍼 AMOLED(아이폰은 3.5인치 LCD)

원래 아이폰 배터리 구리기로 유명했으니 그건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올해 최고의 기대주 중 하나 갤럭시S. 예정 스펙은 최고]



그런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지금 여름에 발표된다는, 그리고 한국에는 도무지 언제 출시될지 모를 아이폰 4G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쳐 저 스마트 폰에 넘어가게 될까?

아직까지는 딱히 그런 신호는 안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나오는 스마트폰들의 하나같이 화려한 스펙들 뒤로 무언가가 빠진 느낌이란

과연 이 놈이 사용자가 쓰기에 편리한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혀 안보이기 때문이다.


국내 핸드폰 제조사들, 혹은 수많은 IT 기업들의 첫번째 실수는

스마트폰을 '전문가'의 영역에 두고서 '전문가'의 눈높이를 맞추려고 해왔다는데 있다.

국내외의 수많은 얼리어답터(라고 쓰고 IT 덕후라고 읽는다 - 본인 포함)들은

스마트폰의 사용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고 믿었고 그것이 자신들만의 고유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다룰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하고, 때때로 뽐냈으며

국내외 많은 제조사들 역시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기계를 만드는 데 바빴다.


만약에 우리나라 어느 회사에 천재가 한 명 있어서 아이폰이 나오기 전에 

정말로 일반인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기획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까?

쓰기 쉬운 스마트 폰? 말이 돼?

일반 대중이 널리쓰는 스마트 폰? 스마트 폰이라는 게 마케팅 타겟이 어딘지 알긴 하는거야?

예쁘고, 쓰기 쉽고..그런데 스마트 폰이라고? 꿈꾸냐?

고정관념.


국내 IT 기업들의 두번째 실수는 'UCI'에 대한 간과일 것이다.

사실 IT 기기에서 최초의 UCI를 적용한 기기는 아이리버에서 나온 U10이었다.


[2.2인치 전면 초대형 LCD 채용과 UCI 채용으로 mp3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U10]


UCI, 즉 User Created Interface라고 불린 이 기능은 단순히 Interface의 변경 뿐만 아니라

플래쉬 활용을 통한 각종 기능 개발이 가능한 수준까지 오픈 되었고

온라인의 여러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능력자들이 달려들어 게임 등을 만들어 올렸다.

하지만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오픈형 게임들이란 그저 그런 조잡한 게임들이 대부분이었고

대개 그렇듯이 '신기하네'하고 그칠 뿐이었다.


그 후 상당수의 mp3들이 이런 개방된 UCI를 제공했지만 사업적인 측면에서 그 기능에 흥미를 보인 곳은 없었다.

다만 하이엔드 mp3와 핸드폰의 주요 사용자이면서 동시에 여론 생성자인 덕후들의 여론에 떠밀려

일종의 팬서비스 형식으로 제공되었을 뿐.


그런데 애플이 이걸로 돈을 벌기로 마음을 먹었다.

앱스토어라는 이름으로.

과연 돈이 될까에 대해 수많은 업체와 관계자들이 반신반의 했으리라.

그런데 이 놈이 소위 말하는 대박이 터져버렸다.

'특허제도'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큼의 파장이라고 해야할까?

취미삼아 만들던 UCI에 흘러들어가기 시작한 돈은 강력한 시장을 형성했다.

게임기 사상 최대의 히트작 중 하나인 NDSL이 전세계적으로 1억대를 살짝 넘게 판매했는데

작년말 기준 아이폰은 약 7천만대, 아이팟 터치가 약 1억대에 달하고

아이패드까지 판매되기 시작했으니 여기에 팔 게임을 만들어라~라고 하면

어느 게임회사가 안덤벼들까.

더군다나 소니나 닌텐도 처럼 협력관계의 회사뿐만 아니라

그 누구나, 심지어는 개인까지도 접근이 가능한 개방시장에.

그리고 열려진 시장과 경쟁은 늘 그렇듯이 발전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게임뿐만 아니라 꿈 같았던 증강현실 같은 기술도 어느새 현실이 되어버렸다.

(불과 작년 10월에 필자가 독일에서 M&S 교육을 받을 때만해도 증강현실이 실용화되려면 몇년은 더 지나야겠다라고 믿었는데!!)



[아이폰에서 지원하는 증강현실. 커피숍 찾는 중]


역시나 일찍이 누군가 어느 혜안이 있는 기획자가 앱스토어의 아이디어를 냈을 때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너같으면 그거 돈내고 사겠냐.

아니었을까?


마치 넋두리처럼 이야기가 길어졌다.

사실 아이폰이 매우 좋은 기기이긴 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사실 못따라잡을 것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삼성의 역작이라는 갤럭시S는 음..스펙이 좋네 라고 하면서도

아직 스펙조차도 알려지지 않는 아이폰 4G를 기대하고 있는걸까?

그건 스티브 잡스가 또 무엇으로 우릴 깜짝 놀래줄까라는 기대 아닐까?

숫자로는 나타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들고 나와서 말이지.


그래서 바라건데, 국내의 수많은 IT 업체들은 기획에 대한 역량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보기 바란다.

물론 기획의 문화를 포함해서.

우리회사에서도 개인들에게도 많은 기획에 대한 요구가 있다.

특히 연구소에 있다보니 때가 되면 '기술개발 제안'이나 '신사업 제안'과 같은 것들을 적어내라는

요구를 항상 한다.

직접 기술 개발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는 것 자체는 좋다.

항상 기술의 최첨단을 최전선에서 맞고 있는 사람들이니

이런 기술 이런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나같은 인간들은 매일 똑같은 것만 보다보면 무감해진다.

나역시 스마트폰은 어려운 게 당연했고, 

나같이 프로그램도 좀 할 줄 알고, 컴퓨터도 좀 잘 다룰 줄 아는 그런 사람들이나 쓰는

그런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입장에서 만들어내니까.


또다른 문제는 문화적인 문제이다.

머리를 열심히 짜내서 훌륭한 제안을 낼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훌륭한 제안(기획)을 해내면 그게 포상으로만 이어지는 게 아니라

각종 통계를 포함한 '근거 자료', CTO 발표 등의 시련으로 이어진다.

안그래도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국내 기업 연구소에서

이건 또다른 잡무에 불과할 뿐이다.

다들 내가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말도 안됨과 현실성 있음의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한 제안서를 써낸다.

우리끼리 하는 말로는 '소설'이며 '창작의 고통'이다.


전문적인 기획부서도 큰 기대를 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다.

전문적인 기획부서의 경우 각종 기획업무에 대한 인식과 인력의 부족

그로 인한 강도 높은 근무에 시달리고 있으며

플래그 십 기획에만 겨우 시장조사를 포함해 디자인 기획

숫자로 드러나는 스펙과 제품 가격의 트레이트 오프를 통해 타게팅 같은

'숫자 놀음'을 좀 더 많이 할 수 있을 뿐이다.


조금 더 안타까운 것은 앞서 계속 이야기 하듯이 그렇게 아이폰에 두들겨 맞고도

여전히 이런 정책을 폐기할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새로 쏟아져 나오는 신형 스마트 폰은 모두 '스펙'에만 초점이 맞추어져있을 뿐

사용자를 위해서 무언가를 했다는 것을 찾기는 힘들다.

다만 안드로이드를 장착했다는 것에 대해 유저들은 '다행이다'를 외치고 있다는 것을

삼성의 플래폼 '바다'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그 사람들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까.


아이패드에 대항한다며 태블릿 이야기를 꺼내는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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